꿀팁

정원스님....왈

hyo joo-o 2017. 1. 10. 17:28

[출처: 중앙일보]
광화문 분신 정원스님,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유서남겨…내용은?

이재명 성남시장은

양반의 고장 안동출신이다.

안동시 예안면

진성 李氏

대통령 될란가?


양반[兩班] : 고려 ·조선 시대의 지배신분 계층.

국왕이 조회()할 때 남향한 국왕을 중심으로 문반()은 동쪽에, 무반()은 서쪽에 섰는데, 이 두 반열을 양반이라고 하였다. 문반과 무반이 처음으로 구별된 것은 976년(경종 1)에 실시된 전시과()에서였다. 이때의 구분은 토지를 지급하기 위하여 정해진 구분으로 다분히 편의적인 것이었다.

관제상의 문무 양반체제로 발전하는 것은 995년(성종 14) 고려가 당나라의 문무산계() 제도를 받아들이면서이다. 이때의 문반은 정치, 무반은 군사를 담당하고 있었을 뿐 문무반()에 대한 차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당의 제도를 그대로 채용한 것이기 때문에 실정에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반 위주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1390년(공양왕 2)에 무과()가 설치되고, 92년(태조 1) 문무산계가 제정 실시되면서 다소 보완이 되었으며, 1436년(세종 18) 무산계에도 정종() 9품이 제정되면서 문무산계가 갖추어져, 《경국대전》에서 성문화되었다.

이때부터 문무반이라는 양반개념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관료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문무반직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가문()까지도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음직()과 과거()를 통한 관직의 세전() 및 폐쇄적인 혼인관계를 통하여 심화되었다. 이리하여 문무반을 뜻하던 양반의 개념은 지배신분층을 뜻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성리학(性)이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지배원리로 자리잡으면서 사족()은 양반층의 공급원이었다. 양반을 사대부() ·사류() ·사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양반의 개념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공명첩() ·관직매매 ·족보() 위조 등의 방법으로 양반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대가() ·세가() ·향반() ·잔반() 등의 구분이 생겼다.

이런 현상은 전통적인 신분체제가 붕괴되는 한말에 이르면 본래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이 양반’ ‘저 양반’ 하는 대인칭()으로 전락하기까지 하였다.

한편, 이들 양반은 교육 ·과거응시 ·입사()에서 배타적인 특권을 누림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였으며, 군역()의 특전을 누렸다.

그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규정 이상의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였으며, 한번 양반이 되면 반역()과 같은 대죄()를 짓지 않은 이상 관직과 토지가 주어짐은 물론, 수족과 같은 노비를 대대로 전할 수 잇는 노비세전()이 보장되었고, 자녀균분제()에 의하여 가산()도 물려줄 수 있었다.


즉, 양반은 서민들을 수탈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반[兩班](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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