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hyo joo-o 2012. 6. 24. 20:43

가족들과 함께 유명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미사에 참석하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들넘이 성당에 다니니깐 함께 미사에 참석하자는 건의에 동참~~~

정말 엄숙하고 성당의 미사와는 차원이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구나!

다만 찬송가가 아닌 그레고리오 미사곡은 어느 나라 원음인지는 모르나

대부분 알아 듣기 어렵게 미사가 진행 되었다.

2012. 6. 24. 10:00~11:00 동안 진행된 미사에 참석하고

나오는 길에 오래된 성당 건물 입구에 설치된 종~~~~~~~~

이 종을 치는 경우는 수도원의 중요한 행사를 알리거나

특히, 낮에 종소리가 울리면 중요한 어느분이 사망했음을 알린다고 하는데...........

멋 모르고 종을 쳤다.[아래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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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이 잠시 난리가 났다...휴~~~

 

 

 

 

 

 

 

 

 

 

 

 

 

 

 

 

 

 

 

 

 

 

 

 

 

 

 

 

 

 

 

 

 

그레고리오 성가 [Gregorian chant]

      가톨릭교회의 로마 전례 성가로서, 중세 이래 계승되고 있는 대표적 성가.

정확하게는 로마 교회 성가라고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604 사망)에 관련해서 그레고리오 성가라고 하는 7, 8세기 이래의 습관에 따르고 있다.

 

독일에서는 Choral이 그레고리오 성가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프로테스탄트의 성가와 구별하기 위해 gregorianischer라는 형용사가 부가되어 있다.

이들은 산문체의 라틴어 전례문을 가사로 하는 성가이며, 거기에 고대 이래 전승되어 온 키리에나 아멘과 같은 그리스어 및 헤브라이어를 가사로 하는 것 및 찬가(임누스) · 속창(세퀜티아)과 같은 비교적 훗날의 창작 운문시를 가사로 하는 것 등을 포함하는 고풍스러운 단선율 음악이다.

 

그 선율들은 밝고 개방적인 온음계적 선법성 위에 전개되어 있으며, 또 그 리듬은 박자나 마디의 테두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유연함을 가진 것이다. 음절적으로 간략한 악곡에서, 1음절에 수십 음표의 콜로라투라가 붙은 화려한 멜리스마틱한 악곡에 미치는 그 전모는, 단성의 음악형식이 도달할 수 있는 인류 최고의 위업이라고 할만하다.

 

이 성가의 본질은 단순히 종교적, 교회적인 것을 초월하여, <전례 음악> 그 자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모든 것을 신 안에서 긍정하는 자의 미사*나 성무(聖務)에 있어서 전례적인 기도의 소산이며, 또 이 성가의 기품에 넘치는 위용은 전례의 격조를 높이는 데도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피우스 10세의 교령(敎令)은 말하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항상 교회 음악 최상의 모범이다」(Motu proprio, 1903)라고. 이 성가의 기원은 멀리 헤브라이와 그리스에 비롯되는데, 4세기의 그리스도교 공인 이래 그 본격적인 발전이 약속되었다.

 

특히 가사로 사용된 성서의 불가타 번역은 이 무렵에 등장한 것이다. 로마 전례의 대강(大綱)을 결정한 그레고리우스가 이 성가를 집대성했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것이었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비타리아누스(672 사망) 시대의 개정이나, 세르지우스(701 사망) 시대의 동방적 요소 도입 위에, 로마에 계승되었을 성가는, 현존하는 다섯 사본에서 볼 수 있는 <옛 로마 성가>일 것이라 생각된다.

 

프랑크 왕 피핀은 메스의 사교(司敎) 크로드간의 요청을 받아, 754년 로마의 성가를 이 땅에 도입했다. 그 후 샤를마뉴시대를 포함해서, 로마와의 접촉이 여러 차례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가는 이 땅에서 독자적으로 크게 번영했다. 바르누프리(782∼86) 및 아마라리우스(831)의 기록은 <메스와 로마의 성가 사이의 현저한 차이>를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장크트 갈렌의 전례도 이 성가를 사용했으나, 노트겔 자신이 <프랑크(그레고리오) 성가와 로마(옛 로마) 성가 사이의 매우 큰 차이>(883)를 확인하고 있다. 장크트 갈렌의 성가는 우선 북이탈리아의 수도원에 파급, 이어서 몬짜나 라베나에 영향을 주었다. 암브로지오 성가도 큰 영향을 받은 후, 마침내 로마 자신이 전면적으로 이 성가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른바 그레고리오 성가란 이것을 가리킨다.


르네상스와 바로크기에 ≪살베 레지나≫와 같은 작품이 만들어졌으나, 메디치판(版)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그 쇠퇴를 벗어나지 못했다. 19세기에 부흥운동이 일어나 바티칸판 성가집(1905∼12)이 공간(公刊)되었다. 이번 공회의는 자국어 전례의 추진에 크게 길을 열었으나, <그레고리오 성가의 수위성(首位性)> (전례 헌장, 1963)의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여러 연구의 성과로서 다음의 두 성가집을 세상에 내게 되었다. 그 하나는 고풍스럽고 간이한 성가를 모은 Graduale simplex(1967)의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수많은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곡(레퀴엠) 등에 특징을 지닌 새 Graduale romanum(1973)이다. 이들 여러 가지의 책은 모두 솔렘 수도원을 통해 교회로부터 나오고 있듯이, 이후에도 크렐을 중심으로 한 솔렘의 연구와 실천은 주목을 받고 있다.